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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좇으며 산다는 것...
허접프로그래머
조회 :
2849 ,
2010/07/09 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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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일본에서 일하던 친구가 국내에 잠깐 들어와서 오랫만에 예전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옛날, 그러니까 90년대 초반... 당시에 한양PC 서브라는 통신사에 '만화사랑'이라는 동호회가 있었습니다. 이후 삼성 SDS에서 운영하던 유니텔로 옮겨서 나름 활발하게 활동하던 동호회였고, 저도 그 동호회에서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요. 어제 만난 친구들이 모두 그 동호회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는 장래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도 좋아했고, 직접 그림을 그리고 스토리를 짜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열띤 토론도 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다가 96년, 모아둔 돈도 없었으면서 집안의 돈을 긁어모아 잡지사를 차렸습니다. 뜻은 거창하게도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를 키워보자는 생각이었지요. 나중에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이 어느 정도 커져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이미 자생적으로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의 수도 적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렸습니다만,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만화사랑 동호회에서 저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함께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열악한 형편이었기에 제대로 된 급여도 주지 못하면서 열심히 뛰어 다니며 모션이라는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직원들 월급도 많이 주지 못하면서도, 장래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기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일일이 일본의 애니메이션 업체들을 방문해서 저작권 계약을 맺었고,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발한발 전진하고 있었지요.
열악한 자본사정에다가 형편없이 작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의 규모 때문에 잡지사의 주 수익원인 광고 수입은 거의 기대할 수 없었고, 판매 부수를 늘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록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판매부수는 꾸준히 늘어났고 슬슬 흑자를 볼 수 있을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달부터는 흑자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에 더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청천벽력같은 IMF가 터졌지요.
일본 애니메이션 업체들에 일일이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었던 우리에게는 엄청난 문제였습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종이값과 인쇄 비용이 몇배가 치솟은데다가 일본 업체에 지불해야 할 저작권료가 환율의 영향으로 세배 이상을 지불해야 할 상황이 된 거죠.
결국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했고, 큰 빚을 지고 회사를 정리해야 했습니다.
함께 꿈을 쫓던 친구들도 하나둘 흩어져서 자기의 갈 길을 찾았지요.
어떤 친구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해서 애니메이션을 그렸습니다. 어떤 친구는 다른 잡지사에 취직했고, 어떤 친구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저는 잡지사를 만들기 이전에 하던 프로그래밍 쪽으로 다시 취업을 하게 되었고요.
어제 일본에서 귀국한 친구 역시 모션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였습니다. 모션을 만들 당시에도 늦은 나이에 공부해서 모 기숙사제 대학에 합격한 찰나여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만, 모션을 창간하기 직전에 학교를 포기하고 잡지 만들기에 동참했던 친구였지요.
그 친구는 모션이 폐간된 후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여기 저기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일본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거죠.
거기서도 늦은 나이에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이라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지도 못하지만 계약직으로라도 계속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합니다. 애니메이션 관련 자격증도 몇개를 취득했더군요.
그 친구를 어제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같은 꿈을 꾸던 친구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집니다.
그 친구는 우직하게 자신의 꿈을 위해 달리고 있었는데 저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은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나 봅니다.
함께 모션에서 일하던 친구들과 만화사랑에서 사귄 친구들까지 여러 친구들이 함께 모여서 다시 그 시절의 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잔 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에, 한마디 건네봅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라. 내가 돈벌어서 제작비 대주마."
이 말은 지켜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더 노력해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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