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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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4946 , 2007/06/0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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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따로 또 같이   2집 (1984/대성음반) [이주원(v, g), 나동민(v, g), 강인원(v, g)]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이들의 가장 큰 공로는 스튜디오 세션의 전문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레코딩 스튜디오, 세션, 편곡의 중요성이 80년대 초반부터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 부각되었지만 실제로 이것이 제대로 반영된 최초의 앨범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 음반의 프로필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80년대 내내 중요한 음반들에서 볼 수 있는데, 레코딩 스튜디오로써 서울 스튜디오와 그 곳 소속 엔지니어였던 최병철, 그리고 세션맨으로서 이 음반에 참여한 이영재(기타), 김광민(피아노), 안기승(드럼) 등은 80년대 연주인이 되었다. 또한 들국화 창단 멤버인 최성원(기타)과 허성욱(피아노) 그리고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기타)도 연주에 참여했다. 우순실이 객원 보컬로 참여하여 노래한 <커텐을 젖히면>은 이 음반의 베스트 트랙이고, 이주원이 결혼한 후 처음 만든 곡이라 감상적이라는 <너와 내가 함께>, 따로 또 같이의 음악적인 성향이 바뀌었음을 드러내는 록 프레이즈가 실린 <별조차 잠든 하늘엔>도 좋은 곡들이다.(박준흠)

        44. U & Me Blue   Cry... Our Wanna Be Nation! (1996/송/LG미디어) [방준석(g, b, key, seq, v), 이승열(g, seq, v)]

노이즈가든의 데뷔 앨범과 함께 90년대 말을 대표하는 한국의 록 명반으로 기억될 수작이다. 전편에 녹아있는 외로움의 정서와 그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 리드보컬 방준석의 블루지한 보컬은 아주 매력적이며,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뛰어난 연주력은 이 앨범의 자랑거리다.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없어>와 건조한 느낌을 주는 <천국보다 낯선> 등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수록곡들은 외국의 어느 밴드 못지 않게 뛰어난 연주와 작곡을 자랑한다. 이 앨범에서의 옥의 티라면 어색한 한국어 작사실력인데, 부정확한 발음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의미가 불분명한 일부 가사들은 때로는 유치하다는 느낌을 준다. 한편, 이들의 데뷔 때부터 지적되었던 오리지널리티의 부재는 2집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U2의 카피가 짙은 방준석의 보컬과 외국 여러 밴드들을 모방한 이들의 사운드는 유&미 블루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동시에 이 앨범을 진정한 의미의 명반으로 인정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국내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수준 높은 연주와 이국적인 스타일의 작곡, 편곡, 보컬로 이어지는 이들의 독보적인 면모는 실질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측면에서 명반으로서의 가치는 얼마든 찾아볼 수 있다. (김영대)

        45. U & Me Blue   Nothing's Good Enough (1994/나이세스) [방준석(g, b, key, seq, v), 이승열(g, seq, v)]

1994년 등장한 이들의 데뷔 앨범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한국적인 감성과는 너무나 차이가 현격한, 어쩌면 처음부터 실패가 에정된 앨범이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블루스와 당시 서서히 부상하던 모던 록에 기반을 둔 두 기타리스트의 음악은 그러나 그렇게 묻혀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시대를 앞서간 앨범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의 이 데뷔 앨범을 내었더라도 그처럼 외면당했을까? 보통 이런 질문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라는 답을 가정한 표현이겠지만 우울하게도 '그렇다'가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적 흐름을 반드시 따라갈 이유는 없지만, 지금 대중음악이 가는 방향은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벼랑끝을 향한 맹목적인 레밍의 행진일 뿐이다. 그 맹목적인 상업주의 행진 중에는 두 음악인이 피운 블루스 넘버 <꽃>의 소박하고 거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맹목적으로 붕괴를 향해 마구 돌진하며 주위의 어떤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와 한국대중음악은 어쩌면 그렇게도 닮은꼴인지! (신승렬)

       46. 다섯손가락   1집 (1985/서울음반) [이두헌(g, v), 임형순(v), 최태완(key), 이우빈(b), 박강영(d)]

다섯손가락의 1집은 80년대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록의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앨범 중의 하나다. 당시 백두산이나 부활, 시나위 같은 언더그라운드적 성격이 강한 밴드들과는 달리 다섯손가락의 음악은 스쿨밴드 특유의 풋풋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는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의 귀에 어필하는 것들이다. 이 앨범에는 8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한 번쯤은 불러보았을 <새벽기차>,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과 같은 노래들이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은 10대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가사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다섯손가락의 음악은 새로움이나 실험정신같은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고, 다섯손가락의 음악이 우리 나라의 음악에 어떠한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음반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이러한 요소들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만으로도 그들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록이라는 음악 자체가 80%의 기존의 틀에 20%의 새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황정)

       47. 전인권,허성욱   1979-1987 추억 들국화 "머리에 꽃을" (1987/서라벌레코드) [전인권(g, v), 허성욱(key, v)]

전인권의 대표작은 들국화 1집이 아니다. 들국화 1집에서 그는 <행진> 등을 부른, 뛰어난 보컬리스트였을 뿐이다. 들국화 1집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오히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만든 조덕환이거나 뛰어난 세션을 보여준 최구희(기타)와 허성욱(키보드, 피아노)이라 해야 맞다. 이후 전인권은 1986년 어정쩡하게 들국화 2집에 참여한 이후 1987년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음반을 발표한다. 그리고 허성욱과 같이 한 뛰어난 곡 작업으로 그가 이전에 "단지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일 뿐"이란 인식을 불식시켰다. 이 음반을 통해 보여준 그의 작곡능력은 정말 80년대 뮤지션들 중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는 다음해에 발표한 솔로 1집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70년대 말부터 축적한 노래 부르기의 열망이 비로소 제대로 분출된 음반으로, <북소리>, <사랑한 후에>, <머리에 꽃을>, <어떤···(가을)>은 그의 여린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베스트 트랙들이다. 이 음반에 참여한 최구희와 함춘호의 연주 또한 '당대의 세션'이었다. (박준흠)

       48.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1995/디지탈미디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양희은 이후 가장 중요한 여성 뮤지션으로, 90년대에는 장필순과 함께 독보적인 존재로 매김한다. 1977년 이정선, 이주호, 김영미와 같이한 포크 그룹 해바라기 1집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가수로서의 '인정'을 받은 것은 그 유명한 <건널 수 없는 강>이 담긴 1986년 1집에서부터였다.

그리고 이 '인정'은 '폭발적인지지' 수준이었다. 원초적인 힘이 느껴지는 거친 음색의 이 곡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그 어느 누구도 보여준 적이 없는 놀라움이었고, "이렇게도 노래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는 굳이 제니스 조플린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가수에게 있어서 노래 부르기의 본질'을 생각하게끔 했다. "여자가수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통렬하게 날려 버린 그녀는 그래서 너무도 소중한 존재다. 그런 그녀가 우리 세션 역사의 한 장을 제시한 1988년 자신의 2집 <바라본다>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1992년 3집에 이어 발표한 본작은 90년대 손꼽히는 명작이자 '여과된 정제미'를 보여주는 숨겨진 걸작이 되었다. "절망에서 무조건 달아나기엔 우리의 하루는 짧다는 것, 외로움에 한없이 부딪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 길어지는 것"이란 <불어오라 바람아>, "일상 속에서 군중 속에 혼자 남겨져 외로울 때 날 위로하는 것은 너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란 <너의 이름>은 이 음반의 백미다.

(박준흠)

      49. 장필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때 (1997/킹레코드)

장필순의 본 모습이 제대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조동익이 음반 디렉터로 참여하기 시작한 1992년 3집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부터였다. <가난한 그대 가슴에>, <강남 어린이> 등이 실린 3집은 가사에 좀 더 치중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조동익의 참가로 지난 음반보다는 포크적인 느낌을 더 많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스터피스인 본 앨범이 1997년에 나왔다. 사실 5집이 나오지 않았다면 장필순은 노래 잘하는 여자가수 정도로만 자리매김될 수도 있었다.

이 음반은 3집 이후 조동익과 같이 한 음악작업의 결과가 완벽하게 그 결실을 맺었음을 보여주었고, 조동익 밴드(조동익, 함춘호, 윤영배, 박용준, 김영석)의 세션은 조동익, 윤영배, 장필순이 공동으로 작업한 곡들에 너무도 역동적으로 매치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 음반에서 가장 놀랄만 한 점은 <그래!>, <넌 항상>, <사랑해 봐도>를 들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장필순의 곡 쓰기 작업이 완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한영애가 4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그녀도 5집을 통해서 싱어 송 라이터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준흠)

      50. 사랑과 평화   1집 (1978/서라벌레코드) [최이철(g, v), 김명곤(key, v), 이근수(key), 김태흥(d), 사보(b)]

1978년 당시 세션 연주자들로서 실력을 인정받던 젊은 뮤지션들인 최이철(기타), 김명곤(키보드)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판 토토(ToTo)로 불려지던 이들은'전문 세션 연주자들이 만든 밴드'라는 계보의 첫 번째 주자로서. 이후 봄·여름·가을·겨울, 야샤, 쿠바 등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명성에 걸맞게 <한동안 뜸했었지>가 실린 이 음반을 발표할 당시는 '국내 최고의 연주그룹'이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80년대에도 각기 연주자와 편곡자로 이름을 드높인 김명곤과 최이철이 그룹의 운영을 주도했던 이들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연주 자체에 천착했던 뮤지션들이었다. 이 음반에는 디스코풍으로 김명곤이 편곡한 슈베르트의<아베마리아>와 베토벤의 <운명>이 실려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최이철의 마우스 튜브 연주가 뛰어난 <달빛>은 지금도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듣기 힘든 비범한 연주가 담긴 곡이다. (박준흠)

     51. 김광석   다시 부르기 (1993/킹레코드)

90년대 초 소극장무대의 주역은 다름아닌 자그마한 키에(하지만 목청은 누구 못지 않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김광석이었다(공연을 마친 후 자기 딸의 돌이라며 떡을 나누어주며 지었던 그의 미소···). 그가 3집과 4집 사이 발표한 비정규 앨범(베스트 앨범의 성격도 띄며)인 <다시 부리기 1>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동물원 시절의 곡, 솔로 시절의 곡, 그리고 미발표곡들이 원곡과는 다른 편곡으로 실려있다(일부는 라이브 버전으로). 이 앨범에는 최백호의 <입영전야> 이후 입대하는 친구에게 불러주는 노래이자 훈련소에서 이등병도 되지 못한 훈련병들의 집단눈물사태를 유발하곤 하는 <이등병의 편지>와 아직 뜨기 이전의 안치환과 공연할 때 듀엣으로 부르곤 했던 <나무>, 대학가에서 오랫동안 불리었던 <그루터기>, <광야에서> 등의 새로운 곡과 <흐린 가을에 편지를 써>, <거리에서>등의 동물원 시절의 곡이 단순한 악기 구성의 간결한 편곡으로 실려 있다. (김민규)

  52. 산울림   3집 (1978/서라벌레코드) [김창완(g, v), 김창훈(b, v), 김창익(d)]

우리 나라에 신중현과 엽전들이 록이라는 형식을 도입했다는 이유 때문에 산울림에게 '한국 록의 선각자'라는 명칭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신중현이 록의 원형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산울림의 3형제들은 끝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정신으로 이미 20년 전에 한국이라는 땅에서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싸이키델릭, 펑크, 메틀 등 갖가지 음악의 형식들을 선보였다.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이들 3형제의 우연한 시도인 <아니 벌써>로 당시 4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중음악계를 향해 포문을 연 산울림은 2집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변화, 혹은 진화의 모습을 예감케 하더니 3집에서는 한 걸음이 아닌 훌쩍 건너뛴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철저한 상업적 패배로 끝났지만 3집에서 보여준 산울림의 모습은 자신들의 색깔을 가지면서 끝없는 실험을 한다는, 어쩌면 모든 음악인들의 지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두에 대한 훌륭한 전범으로 기억된다. 이것이 3집이 산울림의 작품 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최선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며, 그들의 목에 감히 '한국 록의 선각자'라는 화환을 걸어주는 이유다. (황정)

    53. 동서남북   1집 (1980/서라벌레코드) [박호준(g), 이태열(b), 김득권(d), 이동훈(key), 김광민(key), 김준응(v)]

1980년에 발매되었다가 1988년에 재발매되고 1988년 시완에서 또 다시 재발매되었으나 인구에 회자되던 그 전설성만큼 관심받지 못하는 앨범이다. 한동안 <나비>라는 한 곡과 그 음반의 희귀성 때문에 마치 전설 속의 밴드라기보다는 프로그레시브의 가능성을 가졌던 밴드였다. 타이틀(은 아니었겠지만)격인 <하나가 되어요>라는 곡은 보통 가요에 버금갈 뿐이지만 전체적으로 풋풋하면서 세련됐더라면 그럴 수도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나비>라는프로그레시브적 접근을 취한 곡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재발매로 인해 이들의 정체는 밝혀졌겠지만 그 촌스러운 재킷이 구매욕을 상실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특이한 사항을 들자면 양병집이 프로듀서를 했다는 것과 일요예술무대를 진행하는 김광민이 있었다는 것. (한유선)

     54. 듀스   DEUXISM (1993/지구레코드) [이현도(v, prog), 김성재(v)]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이미 지나갔고, 어른이란 이름으로 힘든 직장 갖고, 생활하면서 이미 뽀얀 얼굴은 갔고, 그런 걸 같고 고생이라고 말하고, 고지식한 생각으로 남을 무시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이상하다하고, 동심을 가진 어른들을 이상하다하고, 전자게임, 프라모델, 만활 싫어하고, 그게 왜 재미있는지 이해를 못하고, 그런 사람을 보며 나는 답답하고, 얼키고, 설키고, 꼬이고, 막히고./어렵게 생각하면 힘든 세상이지만 행복은 그리 먼 게 아니야. 작은 기쁨을 느낄 수있다면 이미 넌 행복한 거야"(<Go! Go! Go!> with H2O)는 랩에서 라임을 따지는 이현도의 관심사를 보여준 명곡이다. 그리고 데뷔 음반과 같은 해에 발표된 이 음반은 그들의 진일보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이런 발전적인 모습은 1995년 Force DEUX 때까지 계속적으로 보여주었다. 진정으로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스스로가 음악감독이 되어서 최상의 음반들을 계속적으로 내놓은 경우는 서태지와 이현도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다른 점은 서태지의 음반은 나올 때마다 열광적인 미디어의 추적으로 그의 작업결과물이 낱낱이 해부되었지만, 이현도와 듀스는 그냥 댄스 뮤지션이었다는 것뿐. 그러나 장난 아닌 밀도를 가진 이현도의 음악에서 우리는 천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음반은 그러한 시발점이었다. (박준흠)

     55. 시나위   1집 (1986/서라벌레코드) [신대철(g), 임재범(v), 박영배(b), 강종수(d), 김형준(key)]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헤비메틀의 출발은 참으로 두터운 돛을 달고 시작되었다. 바로 이 앨범 때문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미안할 정도로 이들의 첫 앨범은 정도를 달린다. 디스토션이 걸린 기타 사운드가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그것의 운용방식이 (전통적인 헤비메틀의 관습적인) '리프'와 '솔로'로 구성되며 고음역이 강조되는 보컬의 멜로디 라인은 그것을 구현한 것을 넘어 세련된 창작의 경지에 이르렀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는 앞서 말한 대로 헤비메틀이 지녀야 할 이디엄을 모두 갖춰 제대로 이 장르를 소개할 수 있는 차원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지닌 넘버다. <아틀란티스의 굼>과 같은 곡은 자칫 장황해지기 쉬운 이 장르의 스타일을 잘 정리해 낸 수작이다. 보컬을 맡지 않은 기타리스트가 프론트맨이 되는 록밴드의 규율을 잘 지켜낸 것도 분명 주목해야 할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이 '임재범 버전'과 '김종서 버전'의 두 가지 저번이 존재하는 것은 콜렉터의 아이템으로 더욱 효과만점인 부분이기도 하다. (조원희)

     56. 안치환   Confession (1993/킹레코드)

민중가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노래운동가들이 합법음반을 발표하고 또한 그 음반들이 어느 정도 상업적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도 힘든 일이다. 집회를 위한 선동가의 성격이 짙었던 80년대 민중가요들이 이제는 활동공간이 한계를 벗어나 햇볕 아래로 나오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과 동시에 상업적인 멜로디와의 타협이 필요하다. 안치환은 이러한 경우의 성공적인 사례인 동시에 민중가요를 '구호'가 아닌 '노래'로서의 관점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가수다. 특히 그의 3번째 작업인 <Confession>은 류시화, 정호승, 나희덕 그리고 김남주의 시와 언제나 현실의 문제를 직유가 아닌 은유로서 다루어왔던 안치환의 가사 쓰기로 인해 멜로디의 서정성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사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대학가만을 맴돌던 민중가요가 이제는 그 지지기반을 넓혀가기 위한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는 그의 노래들은 그의 개인적인 노래에 대한 진화와 함께 이 한 장의 음반을 시작으로 한 그의 뒤이은 후속작들의 곳곳에서 그 풀뿌리 같은 끈질긴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즉, <Confession>은 90년대 제도권 진보성향의 노래가 울리는 제도권 시장에서의 첫 번째 자립선언의 결과물이다. (황정)

    57. 삐삐 롱 스타킹   원웨이 티켓 (1997/동아기획) [박현준(g, prog), 달파란(b, prog), 고구마(v)]

처음부터 삐삐밴드는 대중친화적 요소를 많이 첨가한 팬시상품적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2번째 앨범을 내면서 그보다는 그들의 '음악적 의도'에 더욱 노력을 쏟았으며 결국 이 앨범에선 밴드의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그들의 변모된 모습을 세상에 알렸다. 그들의 '카메라 모욕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차트에서의 성적이 매우 높았을 만했던 <바보버스>는 한국 대중음악의 '패턴'을 살펴볼 때 모욕사건 자체보다 더욱 <사건>에 가까운 음악적 파격을 보였으며, 이전의 상업적 성공에 조금도 경도되지 않은 듯한 그들의 태도는 <조금만 더>와 <계단> 등에서 더욱 드러난다. 이전 앨범들에서의 특징이었던 '자의식 과잉'의 가사들이나'지나친 장난기'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가운데, <12시>의 서늘하며 날카로운 서정성은 이들의 앨범을 더욱 완벽하게 이끌고 있다. 특정한 장르에 이끌리지 않는 '삐삐'  프로젝트들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으며 동시에 앨범 제목처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편도승차권이기도 한 앨범이다. (조원희)

    58. 이정선   30대 (1985/한국음반)

이정선은 초기에는 해바라기 등의 활동을 통해 모던 포크풍의 음악적 성향을 보이다가 점점 블루스적 경향의 음악을 하기 시작했고, 솔로 활동과 신촌블루스의 활동을 통해 자기만의 블루스 기타 플레이를 선보였던 음악인이다. 그의 이름으로 나온 음반 중에서 초기작들은 포크 음악의 색이 짙고 후반기에 작품들은 점차 블루스적 체취가 나는데, <30대>는 이러한 블루스적 완성미가 최고도에 달한 음반이다. 그의 뛰어난 어쿠스틱 기타 솜씨가 느껴지는 <우연히>, 한영애가 불러 더 유명해진 <건널 수 없는 강>, 그의 특유의 블루지한 느낌이 나는 <울지 않는 소녀>, <바닷가에 선들>등의 수록곡들은 교본이 될 정도로 일가견을 이룬 그의 기타가 빛을 발하는 곡이다. 그는 블루스의 기본 12마디 코드 진행에서 약간의 변형(리듬에 변형을 준다든지 등등)으로 그만의 독특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바로 그의 음악의 매력이 담겨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정선은 해바라기, 신촌블루스에서의 활동을 통해 블루스 기타를 가장 독창적으로 가요에 접목함으로써 다양한 가요의 장르가 공존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 (황정)

    59. 김광석   4집 (1994/킹레코드)

언젠가 대학교의 콘서트에서 그가 당시 방송순위 1~2위를 다투던 <사랑했지만>을 불러달라는 팬들의 아우성을 거절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무척 난감해하며 "그 곡은 잘못 불렀다고 생각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그런 게 아닙니다"라며 그 원성(?)을 끝내 외면했다. 그는 이미 <나의 노래>를 발표한 3집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모두가 투쟁하던 80년대에 연가를 부르던 (그리하여 노·찾·사 출신의 변절이라는 평가를 듣던) 그는 이제 더 이상 연가를 부르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 90년대에 오히려 <일어나>, <자유롭게>가 담긴 이 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그 곡들보다 <사랑했지만>으로 규정되는 그의 예전 모습들을 더 원하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바뀌어 있었다. 많은 진지한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박제시키려는 팬들의 요구에 괴로워했고, 그들이 밟은 전철을 따라 요절로 자신의 생을 마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자살한 한 아이돌 스타에게 초점을 맞춘 언론과 대중은 죽은 그를 두 번 외면했다. 커트 코베인을 매년 추모하지만 그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음악인들, 유재하 트리뷰트는 만들어도 김광석 트리뷰트는 만들지 않는 음악인들도 그 공범에 속할지 모른다. (신승렬)

    60. VARIOUS ARTISTS  A Tribute To 신중현 (1997/서울음반) [강산에, 시나위, 윤도현밴드, 이중산, 봄·여름·가을·겨울, 퀘스천스, 이은미,복숭아,사랑과 평화, 김광민, 정원영·한상원, 한영애, 김목경,논 피그]

신중현은 60·70년대의 척박한 대중음악계에서 최초로 아티스트적 모습을 보여주었고, 사이키델릭 록, 소울, 브래스 록, 하드 록 등을 자신의 다양한 음악세계에 흡수하여 '신중현의 음악'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산울림 이전 '한국 록'과 동격의 의미였고, 말 그대로 그는 한국 록의 역사이자 산증인이 되었다.

또한 '신중현 사단'을 이끌었던 장본인으로서 자신의 보컬 역량에 문제가 있어서였겠지만 당대의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박인수, 김정미, 장현 등)를 발굴하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라이브와 그가 발굴한 가수들의 음반에서 보여준 연주만큼 뛰어난 자신의 음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본 음반은 그의 노래들이 새롭게 조명되는 시점에서 그에게 영향받은 뮤지션들이 그의 대표곡들을 리메이크하여 2장의 CD에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부른<미련>, 이은미가 부른 <봄비>, 정원영·한상원이 연주한 <석양> 그리고 참가자를 밝히지 않은 <미인>이 압권인 이 음반은 그 자신이 부른 노래보다는 다른 가수들이 부른 그의 노래가 훨씬 빛남을 볼 수가 있다.(이는 밥 딜런 데뷔 30주년 기념공연 음반을 들었을 때의 느낌과 같다) (박준흠)

   61. 삐삐밴드   문화혁명 (1995/송/디지털 미디어) [박현준(g, key, d), 강기영(b, key, g), 이윤정(v)]

안녕하세요, 삐삐밴드입니다. 그렇지요. 저희 중 현준이를 빼곤 지조 없이 지금 테크노 한다고 설치고 다지죠. 윤정이는 음악도 모르는 게 소리만 빽빽댄다고 욕도 먹었죠. "딸기가 좋아/우리집 강아지는 멍멍멍" 따위 가사로 신성한 록을 모독한다고 어쩌구저쩌구 하질 않나, TV에서 개그 한다고 욕하질 않나 또 나중에는 저희가 TV에서 반항했다고 또 뭐라고 하질 않나··· 참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한국에서 음악 하려먼 한 가지만 들입다 파야 하구, TV는 절대 나오지 말구, 보컬은 반드시 보컬 학원 수료한 언더그라운드 출신을 쓰고, 가사는 저항성 넘치게 진지하게 쓰고··· 이렇게 해야 욕 안 먹고 음악할 수 있어요. 근데 저희가 먼저 몸담았던 시나위 출신 어느 후배 음악인은 이 반대로 해도 욕 별로 안 먹고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참, 알다가도 모를 게 대중이고 매니아에요. 아, 또 이런 말하면 음악 듣는 이들을 얕본다고 욕먹겠죠? 그만할게요. 잠깐, 그렇지만 이 한마디는 꼭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엄숙한 표정하지 말고 그냥 들어요. "딸기가 조오아아~!" (신승렬)

 62. 조동익   동경 (1994/킹레코드)

조동익의 노래를 들으면 마치 공선옥의 소설 <시절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버린 70년을 전후로 태어난 세대들이 느낄 수 있는 개발과 향수가 공존하던 거리에서의 유년의 기억과 때로는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때를 '동경'하는, 어쩌면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는 성년의 모습은 조동익의 노래 곳곳에 상쾌한 내음의 송진처럼 배어 있다. 이병우와 함께 한 어떤날의 2장의 음반 이후 오랜 침묵 끝에 자신의 목소리를 조용히 들려주는 조동익의 첫 음반은 80~90년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베이스 세션맨과 걸출한 작/편곡자로서의 그의 모습이기 이전에 개인적인 추억담들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이라는 매개를 택한 한 음유시인의 조용한, 그러나 뚜렷한 독백이다. 그의 노래 속 주옥같은 시어들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한 휴식을 두면서 연주되는 그와 동료들의 연주와 함께 90년대 최고의 자기완성적인 음반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뛰어놀다 들어와 찬물에 밥을 팍팍 말아 먹고는 다시 뛰어나가 놀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동경'하게 하는 조동익의 음악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무르익은 음유시인의 그것에 다름아니다. (황정)

  63.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1989/서라벌레코드)

자신들만의 색을 확고히 지키면서 언제나 새로운 사운드적 실험을 하는 그룹은 과연 몇 팀이나 될까. 리더 김종진의 독특하면서 매력적인 보컬, 화려한 세션진을 통한 뛰어난 연주력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최고의 그룹 중 하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최고의 역작인 본 2집은 연주력과 사운드적인 구현에 있어서 아직도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기 힘든 앨범이다. 그룹 사랑과 평화와 함께 가장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연주를 해내는 팀으로 기억되는 김종진/ 전태관은 놀라움을 안겨준 1집에 이어 2집에서 그 창조적인 연주력의 절정을 선보인다. 송홍섭, 한충완 등으로 이어지는 세션도 세션이지만 <어떤이의 꿈>, <못다한 내 마음을>에서 느껴지는 리더 김종진의 유니크한 기타연주는 카리스마적인 그의 보컬만큼이나 중요도를 가진다. 치밀하게 계획되어지고, 앨범에 사용되는 하나하나의 테크닉이 정교하게 연구되어지고, 사운드적으로 철저하게 실험되어져 탄생된 듯한 느낌을 주는 본 앨범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세션의 최고작이다. (김영대)

 64. 마그마   1집 (1981/힛트레코드) [조하문(g, v), 김광현(g), 문영식(d)]

마그마는 조하문(베이스, 보컬), 김광현(기타), 문영식(드럼)으로 구성된 하드 록 그룹이었고 박두진의 시를 개시한 <해야>로 1980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여하여 은상을 받았다. 당시 대학가요제에 나온 록 그룹들 중에서 마그마와 같이 헤비한 음악을 했던 그룹은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아름다운 곳>, <잊혀진사랑> 같은 헤비한 기타 연주가 담긴 곡들은 80년대 초반에는 작은거인 2집 이외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만약 국내에서 헤비한 록 사운드를 듣고 싶었다면 안타깝지만 1986년 시나위 1집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심야라디오의 리퀘스트곡이기도 했던 <잊혀진 사랑>의 원제는 <4차원의 세계>였는데 심의에 걸림으로써 <잊혀진 사람>으로 개작되었고, 앨범 프린트 미스로 <잊혀진 사랑>이 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록 보컬리스트로도 평가받았던 조하문은 이후 솔로로 전향하여 록 발라드 지향의 가수가 되었다. (박준흠)

 65. 김수철   1집 (1983/신세계음향)

당대의 히트곡 <못다 핀 꽃 한송이>로 시작하여 <정녕 그대를>, <별리>를 지나 <내일>까지 일련의 애상적 발라드는 음반 제작자들의 신주단지, 애절한 이별 노래의 저주받을 '국내 취향'의 전범이 될 법하다. 물론 작은거인에서 하드 록의 한 경지에 올라섰던 김수철의 작품들은 유통기한 3개월짜리 대량생산 복제품들과는 견줄 수 없는 품위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애이불상(슬프되 가슴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즉 감상적이지 않다)의 미덕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슬픔의 승화, 상처를 스스로 핥아 치료하는 짐승의 그것과 비슷한 외로운 존재의 확인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세션이 곧 일렉트릭 사운드로 전환되는 <못다 핀 꽃 한 송이>의 드라마틱한 곡 구성은 가요의 틀속에서도 돋보이고, 작은거인 2집에서 옮겨 온 <별리>의 정조는 멀리는 <가시리>에서 가깝게는 소월의  <진달래꽃>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이별가 전통 속에 고유한 정한을 계승했다 할 만하다. 이윽고 앨범 후반부의 <내일>은 선명한 기타 반주를 곁들여 담담한 체념의 어조로 홀로 가야 할 '멀고도 먼 방랑길', 한 뮤지션의 앞으로의 여정을 예비하고 있다. (조성희)

 66. 정태춘   시인의 마을 (1978/서라벌레코드)

고은의 작품을 좋아하며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인생의 허무함에 싸여 있던 한 시골소년이 1978년 군을 제대하며 그간 만든 노래들을 발표한 것이 본작이다. 또한 앞으로 끊어지지 않을 공윤과의 인연을 맺어준 것도 본작이다. <시인의 마을>의 가사가 시작과 관련이 없고 가사에 방황, 불건전한 요소가 짙어 대중가요로 부적격하다는 판정을 받고 전면 개사되었고, <사랑하고 싶소>도 내용이 지나치게 방황을 강조하고 있다는 이유로 개사되어 발표되었다. 이렇게 이 앨범은 정태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채 방황과 허무로 일관하며 계속적인 정체 모를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떠나고자 하면서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고 방황하는 빈 가슴을 품은 채 떠 돌아다니는 시인의 모습을 공윤의 지적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태춘이 만들어낸 자신이 느끼는 것에 대한 솔직한 그 가사가 적절히 베어 있는 가락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한유선)

 67. 양희은   1991 (1995/킹레코드)

상투적인 표현을 눈감아준다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혹은 언니), 버거운 역사의 등짐을 저 모퉁이쯤 살며시 내려놓고 이제 조용조용 말을 걸어오는 양희은을 이 말처럼 적절하게 형용한 것이 없다. 그이만큼 작곡자 복[혹은 화?]이 넘쳤던 싱어도 많지 않을 터인데, <아침이슬>의 김민기, <한계령>, <찔레꽃 피면>의 하덕규 이후 여기서 파트너로 맞은 이는 막내동생뻘쯤 될 듯한 이병우이다. 언제나 청량하게 곧게 뻗어나가기만 할 것 같던 양희은의 목소리에 어느새 세월의 연륜인 듯 음영이 드리워졌고 그에 맞춰 덤덤한 회한과 호들갑스럽지 않은 달관을 담은 곡들 안에 시종 잔잔하게 뒷받침하는 기타가 호흡을 맞춘다. 그래도 좀 굴곡이 있다 싶은 <가을아침>에서 그려나가는 어느 가족의 아침정경은 정말이지 정겹기 그지없다. 쓸쓸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조성희)

 68. 달파란   휘파람 별 (1998/펌프/도레미레코드) [달파란(prog)]

한국 대중음악계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곳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이 곳에서의 트렌드의 공통점은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본격적이고 능란하게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고, 또한 변형시킨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트렌드의 특성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 '테크노' 앨범이 바로 이것이다. 테크노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샘플과 루프,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적인 음원과 아르페지오, 그 외에도 몇 백가지가 될지 모르는)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달파란/강기영의 것으로 '자기화'했으며, 가장 '한국적인 개성'을 지닌 이박사의 인용이나 낭만적이며 신비주의적인 '컨셉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글로벌한 특성을 지닌, 정말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앨범이 이것이다. 이 앨범이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은 바로 한국의 '트렌드'에 대한 증거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음악철학을 지녔지만 그것을 구체화하여 앨범으로 내놓기는 힘든 일이다. 달파란/강기영의 '테크노 철학'을 그대로 창작해낸 실천주의적 앨범이다. (조원희)

 69. 패닉   Panic (1995/신촌뮤직/아세아레코드) [이적(v,g, key, prog), 김진표(v)]

그야말로 'New Kids On The Block' 동네에 나타난 새로운 아이들. 그들의 정체는 중산층에서 (겉보기에) 별 탈 없이 잘 자란 요즘 애들이지만, 한편으론 '또 하나의 문화'라는 대안문화를 추구하는 진보집단의 2세대로서 사회체제에 대한 분석비판력을 갖춘 세대였다. TV 속의 다소 어설픈 라이브로 혹사당해 최초의 신선한 울림을 잃어 버리긴 했지만 <달팽이>에서 표현된 작고 뭉클하고 꼬물거리는 것에 대한 애정은 새로웠고, 경쾌한 선율 위에 획일적인 사회에 대한 항변을 담은 <왼손잡이>가 모든 삐딱한 성향을 가진 이들의 은근한 동조를 모았던 반면, 이들의 지향은 <다시 처음부터 다시>의 걸러지지 않은 독설과 직설적인 공격성에 집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곡 끝머리에 살짝 비춰진 젊은이다운 웃음기는 <더>의 소름끼치는 파괴적 비전의 확대심화로 일관한 그들의 2집

밑에서는 더 이상 접할 수 없으며, 이적과 김동율의 조인트 앨범 카니발을 보면,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다"는 가사가 의도된 아이러니가 아니라 이적의 진심이 아니었나 의심하게 된다. (조성희)

 70. 갱톨릭   A.R.I.C (1998/강아지 문화 예술) [김도영(v, key), 임태형(v, key)]

굳건하게 '가요 톱텐'의 한 자리를 차지하던 '뽕짝'의 몰락과 댄스 음악의 주류장악이라는 전광석화처럼 벌어진 이 사건은 아직도 흑인음악 (랩, R&B)을 제 나름대로 (또는 멋대로) 차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거리의 아이들이 '크루(crew)'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스스로 창출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클럽 밴드들 틈새에서 마이크와 턴테이블을 무기로 랩을 지껄이는 랩퍼들과 포터블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댄서들의 시도는 (미약하나마) 아직 진행형이다. 강아지 문화/예술의 옴니버스 앨범 <One Day Tours>에 <변기속 세상>으로 참여했던 갱톨릭은 자신과 주변에 대해 투덜거리며 '또 다른 혁명'을 꿈꾸며 'Another Revolution Is Climbing'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뽕' 멜로디 틈새에서 고생하는 랩을 본연의 위치에 놓으려는 이들의 시도는 아직 가능성의 영역일 수는 있어도 치기어리지는않았다. 그리고 현재 갱톨릭에 이어 함께 공연하던 가리온, Da Crew등 랩 그룹의 앨범이 준비중이다. (김민규)

  71. 카리스마   1집 (1988/서라벌레코드) [이근형(g), 김종서(v), 김영진(b), 김민기(d)]

1983년 무당은 자신들의 2집에 담긴 <그 길을 따라>에서 헤비메틀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그리고 1986년 시나위는 최초의 헤비메틀 히트 싱글이기도 한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담긴 헤비메틀 음반을 만들었다. 이후 국내에서는 비록 언더그라운드에서나마 헤비메틀 붐이 일어났다. 카리스마의 본작은 시나위 데뷔부터 불기 시작한 국내 헤비메틀의 붐을 타고 시기적으로 마땅히 나왔어야 할 만한 완성도 있는 메틀 음반이다. 여기서는 당시 절정에 달했던 이근형의 연주를 들을 수 있고, 이는 시나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김종서, 김민기, 김영진이 드디어 카리스마 참가시에는 역량있는 뮤지션들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90년대 변신을 한 김종서도 이근형과 공동 작사/작곡작업을 한 이 음반에서 자신의 음악작업경력 중 최고의 역량을 드러내고, <Run Away>, <저 산너머>에서의 이근형의 기타 연주는 필<feel>면에서 당대 최고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80년대 헤비메틀 역사에서의 슈퍼 세션 밴드이고, 미스테리와는 달리 명성만큼의 완성도를 음반에 담아냈다. (박준흠)

      72. 한대수   무한대 (1984/신세계음향)

황천길을 허위적허위적 올라가는 사람이 남겨놓은 듯한 고무신이 걸린 철조망 사진은 한대수라는 냉소와 허무의식에 사로잡힌 듯한 한 가수의 초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70년대 한국 모던 포크의 역사에서 특유의 냉소와 표현의 모호성으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던 한대수의 자화상은 이렇듯 타인에게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또한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14년이란 긴 쉼표를 마치고 80년대의 마지막에 내놓은 또 하나의 자화상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언어는 더욱 더 은유로 일관하고 그의 냉소의 대상은 점점 더 모호해졌다. 이는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이 그에게 가했던 형벌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기질탓으로 보인다. 즉, 그는 타고난 니힐리스트인 동시에 상징주의자인 것이다. <무한대>에서 한대수는 언어추상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 우리 가요에서 이만큼 자의적인 가사 쓰기가 시도되기는 힘들고 또한 그러한 시도들도 많지 않았다. 흔히 거론되는 화려한 세션과 록적인 시도 및 추상화된 가사미학은 80년대를 마감하는 해에 나온 무한대가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다. (황정)

      73. 안치환   4집 (1995/킹레코드)

갑자기 바뀌어 버린 시대는 누구에게나 혼란스러웠다. 안치환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광야에서>의 비장미는 더 이상은 통하지 않는 시대, 그는 대중적인 서정성과 이제까지 그의 음악의 기반인 건강한 비판의식을 접목하기 위해 애써보았지만 형식이 바뀌지 않은 채 내용만을 바꾼 어색함은 2집까지 계속된다. 수없는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그는 새로운 형식, '록'이 자신이 바라는 대중성과 비판의식의 교점이라는 것을 읽어낸다. 그리하여 3집의 모색기를 거쳐 마침내 피어난 4집의 '록'은 이 음반을 그의 최고작이자 90년대 우리 대중음악의 소중한 성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이 음반을 <내가 만일>로만 기억하고 있는 안치환의 팬, 음반이 아닌 그의 생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안치환의 팬은 그를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관객과 같이 부르는 <당당하게>의 거친 목소리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그 수많은 민중음악인들이 흔적도 없이 스러져간 90년대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다. (신승렬)

      74. 김현식   5집 (1990/서라벌레코드)

당시 김현식의 고통스러운 내면이 담긴 '어두운' 곡들로 점철된 이 앨범은 그의 음악여정의 완성적인 성격을 갖는다. 1980년 <봄·여름·가을·겨울>이 담긴 데뷔 음반을 발표한 이래 이전 4집까지는 각기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던 음반들이었다. 1집에서의 훵키한 <봄·여름·가을·겨울>과 포크적인 <당신의 모습>, 2집에서의 일렉트릭 블루스 록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와 슬로우 록 <어둠 그 별빛>, 3집에서의 퓨전 재즈 취향의 <쓸쓸한 오후>와 세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비오는 어느 저녁>, 4집에서의 애상적인 <언제나 그대 내 곁에>와 <기다리겠소>는 점전적으로 발전하는 그의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단면들이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이니 '음악적인 발전'이니 하는 잣대가 어울리지 않고, 그러한 얘기를 거론할 성질의 음반도 아니다. <향기 없는 꽃>, <넋두리> 단 두 곡만 들어도 느낄 수 있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무섭도록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는 단지 노래를 만들기(꾸미기) 위해 만든 가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 거리 그 벤치>, <거울이 되어> 등 최상의 트랙들이 실려있고, 박청귀의 세션작들 중에서도 1988년 한영애의 <바라본다>와 함께 가장 빛나는 작품이다. (박준흠)

 75. 11월   1집 (1990/서울음반) [김효국(key), 장재환(g), 조준형(g), 김영태(b), 박기형(d)]

11월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하늘바다가 언급되어야 한다. 1989년 <마네킹의 하루>, <거울 속의 얼굴> 등이 실린 데뷔 앨범을 발표했던 하늘바다 <장재환, 김영태>는 (굳이 프로그레시브란 형용사를 동원할 필요 없이) 70년대 클래식 록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시도했던 이들이다. 하늘바다의 이른 좌초는 (단명한 밴드 대부분이 그렇듯이) 보다 명확한 자신의 색을 드러냈으면 하는 여운을 남겼다. 이듬해 이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하몬드 오르간의 김효국과 믿음·소망·사랑의 조준형(g),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의 박기형(d) 등이 장재환, 김영태와 함께 결성한 11월은 하늘바다보다 파퓰러한 사운드를 선보였다. 메인 보컬없이 자신이 만든 곡의 보컬을 스스로 맡은 이 앨범에는 하늘바다 1집에 실렸던 <거울 속의 거울>, <머물고 싶은 순간>이 다시 실렸고, 방송을 탄 <착각> 외에 리드미컬한 곡 전개를 보이는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과 연주곡 <11월의 테미>가 수록되었다. (김민규)

      76.  정태춘   아! 대한민국 (1990/삶의 문화/한국음반)

1991년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정태춘은 불법 음반을 냈다. 90년대 정태춘이라는 가수를 대중들에게 가장 드러나게 했던 공연윤리 심의위원회와 한 가수의 공식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본작<아! 대한민국>이 바로 그 시발점이다. 이 앨범에는 이전까지 그를 그렇게 붙잡고 늘어지던 심의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직설적인 가사들과 우리 전통악기들을 사용하여 (북, 꽹가리, 태평소) 뽑아낸 그의 의지를 뒷받침하는 강한 소리들이 이전까지의 시도와는 다른 차원에서 완전히 그 자세를 확립하고 있다. <일어나라 열사여>, <황톳길> 외에도 <그대 행복한가>와 <우리들 세상>을 통한 질문과 대답을 들을 수 있으며 이전까지 우리 고유의 음악을 옭아매던 한의 정서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분노와 저항을 실은 새로운 국악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공윤에 대항하는 표현의 자유를 드러낸 본작으로 정태춘은 이전의 저항적인 혹은 서정적인 포크 가수에서 새로운 위치를 갖게 된다. (한유선)

   77. 전인권   1집 (1988/서라벌레코드) [파랑새 : 전인권(g, v), 김효국(key), 오승은(b), 박기형(d)]

1985년 들국화 데뷔 음반은 80년대 말 국내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를 연 기념비적인 음반이었고, 들국화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나오기를 꿈꿨던 그룹이었다.

우리말로 된 록 음반으로서 국지적인 느낌에서 탈피한 이 음반은 따로 또 같이 이후에 80년대 초반부터 일부 젊은 뮤지션들이 자신들 음악적 정체성 확보의 일환으로 행했던 '독자적으로 음악하기'의 저변이 확보되었음을 알리는 상징물이었다. 이 들국화의 보컬 리스트로서 카리스마적 보컬을 선보인 전인권은 사실은 들국화 당시보다 자신의 솔로 음반에서 진짜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다. 들국화 당시는 한 명의 멤버로서 조하에 충실했지만 1987년 <전인권·허성욱 추억 들국화> 앨범과 본 음반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감성은 사실 들국화 당시로는 예측할 수 없었던 점이었다. "가을비 소리 없이 내리네/ 거리마다 은행잎이노랗게/약속은 자꾸만 맴돌고/비에 젖어 자연스레 진해진/걱정없는 저 자주빛이 부러워"(<가을비>)와 같은 노래에서 보여준 곡 만들기 역량은 당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반열에 충분히 오를 만했다. 자신의 밴드인 파랑새와 같이한 이 음반에는 <가을비>, <아직도->라는 명곡이 있고, 게스트 기타리스트 최구희의 명연도 빛났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헛사랑(맴도는 얼굴)>도 실렸다. (박준흠)

   78. 시나위   4집 (1990/오아시스레코드) [신대철(g), 김종서(v), 서태지(b), 오경환(d)]

이제 와서 80년대 말의 국내 메틀 씬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했다는 생각과 함께 음악계는 10년 싸이클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헤비메틀의 춘추 전국시대였던 당시 시나위는 김종서, 강기영(달파란), 서태지, 임재범, 김민기 등 이름만 해도 쟁쟁한(기준은 없음) 이들을 배출해낸 밴드로, 아마 국내 록 트리를 그린다면 가장 많은 잔가지를 뻗는 밴드가 될 것임은 믿어 의심할 바 없었다. 이태원, 파고다 연극관, 록 월드 등에서 공연을 하며 클럽도 거의 없이 인디 레이블도 없던 시절 국내 헤비메틀 음반의 포문을 열고 1986년 이후 꾸준한 활동을 해온 신대철은 은근과 끈기의 기타맨이라 할 수 있겠다. 신대철, 김종서, 오경환, 당시 나이를 속였던 서태지의 라인업으로 녹음된 1990년의 본작은 당시 메틀 음악들보다 깔끔, 세련, 매끄러움을 가졌고 <겨울비>덕에 방송도 탈 수 있었다. <Farewell To Love>, <황무지> 등이 수록. 사실 음악보다도 시나위의 불사정신을 존경해 마지 않는 바이다. 이 앨범 뒤로 시나위는 잠시 해체했었지만···. (한유선)

      79. 김광석   2집 (1991/문화레코드)

<기다려줘>의 히트로 홀로 서기에 성공한 2년 후 발표한 이 앨범에도 역시 동물원이란 꼬리표가 뒷표지, 재킷 등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그가 이후 자신의 빛나는 음악활동을 스스로 끝장내고 황망히 떠나 버린 이제 와 보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김광석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그리고 노래방 애창곡 목록 속에서) 대체할 수 없는 위치를 장악하도록 도왔던 전형적인 '김광석 표 발라드' <사랑했지만>은 한국 대중 가요에 그리도 흔한 슬픈 사랑노래의 한 절정을 긋는다.

그 곡 하나로는 어쩌면 기막히게 노래 잘하는 발라드 가수 탄생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지 모르지만, 바로 뒤를 잇는 문대현의 <꽃>에서 엄숙하게 불러가는 그의 목소리가 전달하는 비장한 서정미는 대한연합노래패 메아리로 시작한 이력을 실감케 하고, 잔잔하고 덜 극적인 진행을 보이는 <사랑이라는 이유로>는<사랑했지만>의 애절함과는 또 다른 애수 섞인 차분한 아름다움을 보이며, 이장수의 가사에 스스로 곡을 붙인 <슬픈 노래>는 일상 속에서 노래의 의미를 찾는 그의 여정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조성희)

      80. 어어부 프로젝트   손익분기점 (1997/동아기획) [어어부(v, har), 장영규(v, b), 원일(북, 장고, 꽹가리)]

'어어부'에서 이제는 '저자'로 이름을 바꾼 백현진이 이끄는 어어부 밴드(2집을 내면서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로 바뀌었다)의 노래를 듣고 혹자는 대번에 혀를 찬다. 이것도 노래라고 하는 거냐며. 1996년 발표된 이 앨범은 연주와 보컬 모든 부분에서 그 해 최고의 충격 앨범이었다. 그 충격을 감지한 사람은 비록 몇 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나쁜영화>에 삽입되었던 <아름다운 세상에-어느 가족 줄거리>는 분명 영화보다 훌륭했다. 4곡만 수록된 미니 앨범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약간 산만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지만 다행히도 앨범애서의 새로운 시도들이 단지 즉흥적인 발상이라든가 치기 어린 일회적인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느낌은 없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원일의 영향이겠지만 국악적인 요소들도 겉돌지 않게 소화되고, 실험적인 사운드들이 어느 정도 정제되어 음악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양손을 들어주고 싶다. 과연 어어부 PS가 이 음반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을지는 문제삼고 싶지 않다.

얼마 전 또 다른 충격을 담은 2집을 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SBS와 PBS에서는 18곡 모두 염세와 허무를 이유로 방송금지판정을 내렸다. (한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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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jhhjw (ID) ljhhjw님의 미디어로그 가기  / 07-06-05 16:17/ 이댓글에댓글달기
  저거 다 가지신 분이 계실지..
  bluemun (ID) bluemun님의 미디어로그 가기  / 07-06-06 1:00/ 이댓글에댓글달기
  보드나라에서 이런 좋은 글을 보다니 감사
  iamafool (ID) iamafool님의 미디어로그 가기  / 07-06-10 14:25/ 이댓글에댓글달기
  장필순과 김광석의 다시부르기를 보니 갑자기 노래가 듣고 싶어서 지금 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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