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I를 인수한 AMD가 미래는 퓨전이라며 APU를 대대적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인텔이
CPU와 그래픽 코어를 같은 PCB에 얹은 1세대 코어 프로세서 클락데일 코어 i3와 일부 코어 i5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CPU와 그래픽 코어(이하 iGPU) 통합 시대를 열었다.
2010년 1월 출시된 클락데일은 각각의 CPU와 iGPU를 얹은 구조상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라 보기 어려웠지만, 이후 AMD의 라노 APU보다 약 반년 빠른 2011년 1월 2세대 코어 프로세서 샌디브릿지에서
진정한 통합을 이뤄내었다.
하지만 APU를 메인스트림 사용자 대상으로 내놓은 AMD와 달리, 엔트리급부터 하이엔드
모델까지 그래픽 코어가 통합된 인텔 CPU는 샌디브릿지 출시 당시부터 코어 i5급 이상의 고성능 모델에 대해서는 iGPU 무용론이
제기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코어 i5 급 이상의 고성능 모델 사용자는 높은 확률로 별도의 그래픽 카드를 쓰고
있을 것이라는 점. 따라서 효용성이 크지 않은 고성능 모델은 그래픽 코어를 빼고 수율을 높여 가격을 낮추거나 CPU
코어를 더 늘려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꾸준히 나왔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바램과는 달리 인텔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CPU 개선은 뒷전으로 미루고
iGPU의 개선에 매달리면서 거의 10년간 메인스트림 CPU 라인업의 쿼드 코어 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인텔이 2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샌디브릿지 이후 9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커피 레이크
리프레시에 이르러 마침내 그래픽 코어를 뺀 F 시리즈 CPU를
내놓았다. 일단은 오버클럭이 가능한 'K' 버전 4종과 Non-K 시리즈의 F 버전 1종으로 총 다섯 개 모델이
발표되었고, 이중 코어 i5-9400F가 국내 시장에도 출시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인텔이 마침내 고집을 꺾고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고 훈훈하게
끝날 수 있지만, F 시리즈의 실체를 보면 마냥 반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텔 'F' 버전 CPU, iGPU 불량 모델 재활용?
그래픽 코어가 없는 인텔의 'F' 시리즈를 환영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펙과 가격이다. 기사 작성 시점에서 제품 페이지에 가격이 정식으로 공개된 제품은 코어 i5-9400F 한 개 모델인데 '코어 i5-9400'과 가격이
동일하며, tomshardware등 외신에 따르면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제품들도 iGPU가 동작하는 제품과 가격이
동일하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i5 이상 사용자라면 최소 메인스트림 이상 그래픽 카드를 사용 중일 가능성이 높고,
이들에게 iGPU는 그래픽 카드 문제 발생시 임시 화면 표시기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iGPU가 없는
제품을 있는 제품과 같은 가격에 판다?
게다가 'F' 시리즈에 iGPU가 지원되지 않는다지만 기능면에서의 이야기고, 물리적으로는
iGPU가 여전히 남아있어 TDP나 부스트 클럭 유지 등 성능이나 기능면에서 일반 버전과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근래 14nm CPU 공급 부족 사태가 결합되면 인텔이 'F' 시리즈
모델을 출시한 이유는 자연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
'iGPU 불량 모델의 재활용'
단순히 면적 비율만 고려하면 CPU 코어 불량율이
높겠지만, 이 경우 코어 i9 모델을 i7, i5, i3, 펜티엄,
셀러론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반면 iGPU가 불량이면 재활용이 불가능하므로, 전체 폐기 모델 중 CPU 코어 불량보다 iGPU 불량이
원인인 경우의 비중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까지는 폐기하던 'iGPU 불량 모델 재활용'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수하고 'F' 시리즈를 출시한 것은 그만큼 14nm CPU 공급 부족 현상이 심각하며, 'iGPU 불량
의심 모델'을 별도 제품으로 출시할 만큼 그 물량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인텔은 14nm CPU 공급 부족이 계속되자 14nm 공정 생산량 확대를 위한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올 연말 10nm 아이스 레이크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일부 메인보드 칩셋의 제조 공정을 22nm로
후퇴시키는 한편 'F' 시리즈를 출시하는데서, 실제는 14nm 공정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의심도 피할 수 없다.
인텔 9세대 코어 시리즈 'F' 시리즈 주 타겟층은?
'F' 시리즈는 일반 모델과 똑같은 CPU 스펙에 똑같은 가격이 책정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인텔 자신들도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할 것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F'
시리즈를 출시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14nm CPU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인텔이 서버용 제온과 노트북 대응 모델
공급을 우선하면서 PC DIY 용 출하량을 축소할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할 때, 'F' 시리즈는 일반 사용자보다 CPU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한 데스크탑용 OEM을 주 대상으로 하는 제품으로 판단된다.
iGPU가 필수인 노트북용 모델과 달리 데스크탑 모델은 iGPU가 없어도 외장 그래픽
카드로 쉽게 대체할 수 있고, 게이밍 모델에서 소비자들이 CPU에 바라는 것은 iGPU가 아닌 만큼 물량이 부족한 일반 제품의
요구 수량을 'F' 모델로 채우기 위해 일반 모델과 클럭을 동일하게 책정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고성능 CPU의 iGPU 무용론, 'F' 시리즈로 인텔도 인정?
코어 'F' 시리즈가 iGPU 불량 모델의 재활용 가능성일 불편한 추측을 잠시 미뤄두면,
2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샌디브릿지부터 소비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고성능 모델의 iGPU 무용론이라는 면이
보인다.
인텔이 2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샌디브릿지에 iGPU를 탑재한 계속 iGPU 개선에 몰두한
것은 당시 PC 시장의 중심이 데스크탑에서 노트북이나 일체형 PC 등의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겨간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iGPU를 개선해도 AMD APU의 iGPU 성능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엔트리급 외장 그래픽 카드에 준하는 성능을 낸다고 해도 한 두 세대 전 모델과의 비교였지 최신 모델과 비교하면
성능 경쟁이 어려웠고, 아무리 게임 성능이 개선되어 왔다고는 하지만 외장 그래픽 카드와 비교해 해상도와 그래픽 옵션에서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일반적인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처럼 iGPU 개발에 매달리는 인텔의 전략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특히 고성능 모델 사용자 입장에서는 외장 그래픽 카드가 고장났을 때 '화면 표시기' 외에는 쓸 일도 없는 iGPU가 전체
CPU 다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날이 커져가는 현실에 불만을 토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텔의 iGPU 포기'를 소비자들이 포기할 때 쯤 등장한 'F' 버전은 인텔이
하이엔드 모델에서의 iGPU 포기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2020년 자체 외장 그래픽 출시를 예고한 사실을 감안하면 가능성 자체는 충분하다.
인텔의 외장 그래픽은 엔터프라이즈 대상 모델을 우선 하지만 게이머 대상 제품도 출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자연히
AMD 및 엔비디아와 경쟁해야 하는 인텔 입장에서 외장 그래픽 생산 설비와 수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고, 여기에 하이엔드 CPU에
iGPU를 제외하면 CPU 생산양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동시에 외장 GPU 생산 설비 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매력적인
옵션이다.
게다가 2019년말 출시를 앞둔 인텔의 10nm CPU 양산 수율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14nm 공정이 사용될 마지막 메인스트림 CPU인 9세대 코어
프로세서에서 iGPU를 비활성화한 'F' 시리즈의 출시는 본격적인 iGPU 미포함 모델 출시에 앞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한 시험작 성격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지, 인텔이 'F' 시리즈를 진정으로 미래 'iGPU 미통합' 모델의 시험작 역할을 기대했다면 지금과 같은
가격과 스펙 대신, 4세대 코어 프로세서 당시 코어 i7 및 제온 E3 v3 시리즈와 유사한 차이를 보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한편, 인텔이 앞으로 고성능 CPU에서 iGPU를 뺀 제품을 정식 출시하더라도, 외장 그래픽 카드 고장시
급한대로 '화면 표시기'의 역할은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능은 남겨주었으면 하는 개인적 희망사항을 표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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