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부품 시장에 관심이 조금만 있는 분이라면 언젠가부터 Z87이나 Z97과 같은 Z시리즈
메인보드에 '구매시 XXX를 드립니다'는 구매이벤트를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계시리라 믿는다. 필자 기억으론 Z77 시리즈때부터 거의
유행처럼 번지지 않았나 싶은데, A업체가 파워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하면 B업체가 곧 마우스를 주는 이벤트를 하고 그러면 머지않아 C업체가
메모리를 주는 이벤트를 하는 등 구매시 뭘 주지않는 제품이 없을 정도로 거의 전 브랜드가 이벤트를 하곤 했다.
지금도 살펴보니 MSI, 기가바이트(제이씨현), ASUS(아이보라) 에서 'XXX개
한정', '소진시까지' 등등의 문구를 앞세워 구매시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Z97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이들회사와 더불어
ASROCK까지 4개 브랜드뿐이므로, 거의 대부분이 다 증정 이벤트를 하는 셈이다.
먼저 Z97로 대표되는 '메인스트림' 제품이 국내에 얼마나 유통되는지를 체크해봤다.
다나와 기준 현재 4개 브랜드 7개 유통사 중복유통포함 114개 제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실 제품기준으로는 60~70제품 정도로 예상된다. 수년
전 만 해도 10개이상의 브랜드와 종류만 수백종이 넘었던 것에 비하면 그 제품수가 많이 줄어 소비자의 선택의 폭도 그만큼 제한된 것이 사실이다.
이를 다른시각으로 보면 그만큼 z97을 선택하는 경우가 이전에 비해 많지 않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엔트리제품에 주도권 넘어간 메인보드 시장
조금 옛날 이야기를 하면 2000년대 초반에는 각사의 주력제품군은 현재의 z97급의
메인스트림 라인업이 차지했다. 이는 보급형 제품도 메인스트림과 가격 차이가 당시엔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 보급형 제품과 메인스트림 제품이
기능과 성능에 차이가 의외로 많았다는 점 등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으로 칩셋에 따른 성능 경계가 모호해지고, 보급형 제품의 가격이
메인스트림과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중고급형 제품을 사야할 이유가 '하나씩' 사라져갔다. 성능, 기능, 호환성 하나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무슨차이가 있는지 파악이 어려운 시점까지 도달했다. (오버클럭은 여전히 차이가 있다)
특히 그래픽카드나 CPU와 같은 컴포넌트 그리고 SSD의 선택유무에 따라 전반적인 PC의
성능이나 특정한 성능이 상당히 차이나는 것과 달리 메인보드는 칩셋에 따른 성능 차이가 없어 가성비 높은 PC를 구성하는데 보급형 칩셋 메인보드가
거의 필수부품이 되었다는 점, 여기에 오버클럭이 성능향상을 위한 필수조건에서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하면서 수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고성능
메인보드의 필요성은 더욱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으로 한 메인보드 유통사에 따르면 국내 시장에서 현재 Z97급 메인보드가 전체
메인보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메인보드 마케팅과 매출 실적 개선의 첨병, Z97
그러나 대부분의 판매를 H81이나 B85같은 보급형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메인보드시장의 헤게모니는 Z97시장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봤을때는 Z97급 메인스트림이 여전히 주력시장이라는 점,
이때문에 각 브랜드의 본사에서 전체 매출실적과 같은 무게로 Z97 매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거의 대부분의 메인보드 유통사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대만 본사에서 오는 판매촉진의 대부분은 Z97시리즈의 시장점유율과 매출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고 한다.
둘째로 Z97시리즈같은 고가형 제품은 매출을 쉽게 올리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단순한
예로 볼때도 H81이나 B85급의 최소 2배에서 기본 3배에 달하는 판매가격을 갖추고 있으니, 매출기준으로만 보면 Z97 급 메인보드를 1개만
판매하면 H81급 메인보드 석장을 판매하는 것과 같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이것도 최소일뿐 좀 괜찮은 Z97급 메인보드는 20만원대가 훌쩍
넘어간다.
셋째로 브랜드 마케팅 성공의 잣대가 곧 Z97시리즈의 판매율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보급형 시장에서는 브랜드보다 가격이 조금이라도 더 싼 제품이 선택의 확률이 높은 반면, Z97과 같은 중고가형 제품은 조금의 가격차이보다 제품의
기능이나 브랜드 이미지, 신뢰성, 구매후기 등이 제품구매에 더 많은 작용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Z97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브랜드 이미지나 제품이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 되므로 Z97시장의 점유율에 많은 회사들이 각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등장한 Z97마케팅, 구매시 XXX를 드립니다
이러한 사정이다보니 국내 유통사들은 보통 메인보드 시장을 투트랙으로 접근하고 있다.
H81이나 B85같은제품은 상대방 제품보다 조금이라도 싼가격에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을, Z97과 같은 중고가형 시장은 가격에 대한 구매
탄력성이 보급형보다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므로 가격자체를 내리기보다는 단기간의 이벤트로 인위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전략을 쓴다. 실제로
Z시리즈에 처음 대대적으로 구매이벤트를 붙인 모회사는 전달대비 약 300%의 매출신장을 이뤘다고 하니 그 효과가 분명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곧이어 다른회사들 역시 같은 전략으로 대응하는 형태가 반복되고 결국 누가 먼저
치고 빠지는지를 서로 눈치만 보는 눈치게임 시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커져가면서 결국 이벤트가 없는것이 이상한 상황까지 왔다. 필자가 이와 관련해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이 '어차피 다른회사가 할거면 우리가 먼저 치고 빠지는게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적절한 타이밍을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는 듯 했다.
결국엔 차별화에 대한 숙제만 남아
이러한 이벤트가 소비자에게 과연 득이되는지 아닌지에 대한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고싶은
생각은 없다.(쓰다보니 상투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길래 지우고 다시쓰고있다) 사는사람 입장에서야 조금이라도 싸거나 뭐 하나라도 더 주는것을 구매하는
것이 인지상정, 어차피 '그게 그거' 라는 생각에서는 결국 잿밥에만 눈독이 들기 마련이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2000년대 초반의 게임잡지
번들사태(번들 CD경쟁시대/
엔하위키)가 생각나는건 왜인지.
결론만 말하자. 게임잡지 번들사태에 휘말린 모든회사들은 다 망했다. 아예, 잡지라는
헤게모니를 결국 온라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매거진에 넘기는데 부채질만 한 셈이 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필자도 이에대한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중 하나다.
이러한 상황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차별화가 더이상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Z97급과
같은 중고급형 제품은 앞서 언급했듯 가격보다는 브랜드 신뢰성, 사용자들의 구매후기, 브랜드 마케팅, 제품 신뢰성 등이 구매에 중요한 판단을
제공한다. 따라서 특정한 제품이 정말로 판매가 높으면 그에 대한 이유가 명확히 존재하는 시장이 Z97급의 메인스트림 시장이다.
그러나 이런 증정 이벤트로 물을타버리면, 소비자는 더이상 브랜드 신뢰성이나 마케팅,
제품신뢰성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이벤트 하는놈'과 '그렇지 않은놈'으로만 구분되고, 결국엔 '그놈이 그놈'이 되어버린다. 결국
그동안 열심히 쌓아놓은 브랜드 신뢰성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리게 될 뿐임은 물론, 스스로 싸구려 인증 하는 셈이다.
하고싶음 하라. 말리진 않겠다. 필자도 소비자 입장에서 뭐라도 하나 더 주는것 사는게
좋다. 단, 그것만 기억하라. 그 브랜드가 좋아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벤트를 하지 않으면 살 생각이 없다. 이벤트가 없다면 그땐 필자가
선호하는 '모브랜드'의 제품을 제값주고 당당히 구매하겠다.
스스로 '나는 싸구려야, 그래도 많이팔면 장땡임' 이라고
병맛인증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어떤소비자가 더 구매해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