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CBS에서 제작된 TV 드라마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를 아는가? 아니면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같은 제목의 노래도 있다) 이것도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는 어떤가? (이렇게 기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것 같은 지킬이나 브루스 배너, 청정 에너지 발전소로 칭송받는 원자력 발전소지만, 악의 화신 하이드, 행상도 파괴하는 헐크, 전세계를 방사능 위협으로 몰아넣는 원자력 발전소의 목적형 물건인 핵폭탄등, 기자가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모두 대상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식칼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요리를 할 수 있지만, 광기의 살인마 손에 들어가면 연쇄살이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처럼, 세상 모든 사물에는 크건 작건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지금부터 살펴볼 그리드 컴퓨팅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드 컴퓨팅(Grid Computing), 천사의 모습
선과 선이 만나는 곳을 하나의 PC, 이들의 힘을 모으는 것을 그리드 컴퓨팅이라 볼 수 있겠다
요즘도 쓰이는지 모르겠지만, 기자가 중고등학교 때만해도 기술 과목에서 도면 작업할 때 모눈 종이를 사용했는데, 그리드는 바로 이런 모눈 종이의 가로 세로 선이 만나는 형상을 말하며, 우리말로는 '석쇠'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그리드는 시스템의 여유 자원을 공유해 대규모 작업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리드 컴퓨팅이 뭔지 몰랐던 독자라도 이쯤되면 그리드 컴퓨팅이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을텐데, 바로 이렇게 서로 연결된 PC끼리 작업을 나눠 분산 처리하는 것을 말하며, 일반 PC 사용자 입장에서는 한 번쯤 들어본 Foliding@Home(폴딩엣홈) 역시 이러한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한 작업이다.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한 폴딩엣홈의 소개 영상(We are One! Heal the World)
폴딩엣홈은 그리드 컴퓨팅에 참여하는 PC들의 여유 성능을 이용해 단백질의 분자 구조를 분석, 각종 질병의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의 프로젝트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수퍼컴퓨터라도 몇 달이 걸릴 작업을 전 세계에서 참여한 사람들의 컴퓨팅 성능을 이용해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
그리드 컴퓨팅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수상한 힉스 입자 발견에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그리드 컴퓨팅은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힉스 입자 발견을 위해서도 사용되었는데, 입자 가속기가 위치한 CERN에서 촬영한 1초에 수십만장의 사진을 분석하여 원하는 결과를 찾기 위해 LCG 그리드 컴퓨팅을 구축했다.
34개 국가가 참여해 총 코어 20만여개의 코어와 150PB 수준의 저장공간을 구현한 LCG 그리드 컴퓨팅을 통해 연간 생산되는 25PB(1PB = 1024TB = 4TB 하드디스크 256개) 수준의 데이터를 처리했으며, 이번 발견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견한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명예고슈와 프랑수아 앙글레르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 명예교수가 노벨 몰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악성 코드와 동급 취급 받는 그리드 컴퓨팅, 어둠의 그림자
그리드 컴퓨팅은 잘만 사용하면 전세계를 하나로 묶어 인류 공동체 발전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이 세상 모든 것에 있는 양면성은 그리드 컴퓨팅 또한 예외가 아니다.
민감한 백신은 그리드 컴퓨팅을 악성코드로 잡아내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리드 컴퓨팅의 경우 전체 작업을 사용자들의 PC에 나눠서 진행하게 되므로, 특히 대량의 네트워크 트래픽이 필요한 온라인 게임이나 웹 하드 업체, 동영상 서비스 등에서 도입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리드 컴퓨팅 중 이렇게 데이터 전송에 특화된 부분은 그리드 딜리버리(Grid Delivery)로 구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보통 그리드 컴퓨팅과 그리드 딜리버리를 동일시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서비스 업체에서 그리드 딜리버리를 도입하면 사용자 PC의 인터넷 트래픽과 디스크 공간, CPU 성능을 일정 수준 활용할 수 있게 되므로 서버와 회선 유지비를 줄일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리드 딜리버리로 자신의 시스템 자원 일부가 이용된다는 점이 신경 쓰이겠지만, 사용자가 많이 몰리거나 회선 상태가 안 좋을 때도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크게 문제 삼을 부분이 아닐 것이다.
단, 상식적인 선에서 동작한다면 말이다.
◈ 서비스 업체들의 그리드 컴퓨팅(딜리버리), 어떤 문제들이 있었나?
사용자 동의없이 그리드 컴퓨팅을해 문제를 일으켰던 아키에이지
그리드 딜리버리의 대표적인 문제는 지난 2013년 1월 2일 오픈베타를 시작한 아키에이지처럼 사용자 몰래 그리드 딜리버리 기능을 집어넣거나, 분명히 그리드 딜리버리를 쓰는 프로그램은 종료했지만 연동된 기능은 종료되지 않아 계속 시스템 자원을 한계까지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당연히 인터넷 서핑이나 문서 작업만 하는데도 하드디스크가 끊임없이 돌아가서 창 전환만 한 세월, 광랜을 쓰고 있어도 인터넷에서 자료 좀 찾아보려면 14.4K 모뎀이 빨랐다고 느껴질 정도로 웹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동영상 재생에 그리드 컴퓨팅을 썼던 네이버는 최근 웹툰 보는데 그리드 컴퓨팅을 도입했다
이런 일은 지난 2000년 대 초중반 네이버가 동영상 서비스에서 사용한 터보 플레이어가 대표적으로, 터보 플레이어를 설치하면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사용자 네트워크와 스토리지를 임의로 사용하는 문제가 있었으며, 올해 2월 초에 웹툰을 빨리 볼 수 있게 해준다며 제공하기 시작한 스피드 뷰 프로그램도 그리드 딜리버리 기능을 이용했다.
그리드 딜리버리 프로그램의 일종인 스피드뷰는 웹툰을 빨리 보고 싶다는 구독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그리드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깔게해서 문제가 되었는데, 지금은 지적받고 관련 내용을 수정했지만, 여전히 초기에 제대로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웹툰 구독자들로부터 원성을 샀으며, 결국 서비스 개시 한 달도 되지 않아 스피드뷰 서비스는 중지 되었다.(네이버 스피드뷰 기능 중지 공지)
DAUM은 Pino라는 이름으로 동영상 서비스에 그리드 컴퓨팅을 적용한다
이런 그리드 딜리버리 기능은 네이버 뿐만 아니라 다음의 동영상 서비스 역시 피노(Pino), 싸이월드 배경 음악 재생 서비스나 판도라 TV에서도 사용되었지만, 정작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작동 범위나 방식에 대해 정확히 알리지 않고,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 법을 제대로 공지하지 않는, 일명 서비스 사들의 갑질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리드 딜리버리(컴퓨팅), 지나친 업체 편의 주위가 문제
ET를 찾아라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하는 SETI@Home)
폴딩앳홈이나 LCG 그리드 컴퓨팅 같이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리드 컴퓨팅의 경우, 대부분의 사용자가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어느정도 시스템 성능 하락을 감수한 상태에서 참여한데다, 사용자가 성능 하락을 체감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시스템 성능을 끌어쓰지는 않기 때문에 문제될 소지가 거의 없다.
서비스 업체야 돈 아끼고, 품질도 유지하니 좋지만 사용자 입장에선 얌체 같을 수 있다
문제는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그리드 딜리버리를 상업적인 서비스에 적용한 비 양심적인 업체들로 부터 발생하는데, 업체 입장에서는 사용자의 시스템을 서버의 일부로 사용하는 셈이 되며, 서버와 트래픽 유지를 위해 추가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업체 입장에서는 그리드 딜리버리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그리드 딜리버리를 사용할 경우 사용자 수 = 서버수 로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텐데, 이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업체가 돈은 돈대로 벌면서 서비스 투자는 꺼리고,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얌체족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일부 얌체 업체의 그리드는 관련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일부 업체의 경우 사용자들이 약관을 잘 읽어보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을 넣어놓는 경우도 있는데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사용 약관을 일일이 읽어서 분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작하는 그리드 딜리버리로 인해 다른 사람과 서비스 업체가 자신의 PC를 몰래 쓰는, 쉽게 말해 백도어 악성 코드와 그리드 딜리버리를 동급으로 취급하게되는 결과를 낳게 되며, 결국 이는 그리드 컴퓨팅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상업적 업체의 그리드 컴퓨팅은 주로 보안에 취약한 ActiveX를 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지?
이러한 문제외에도 그리드 딜리버리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업체들이 보안 문제에 대해 만악의 근원으로 지탄받으며 창조사(社)인 MS조차 포기한 엑티브X(ActiveX)를 쓰기 때문에 국내에서 그리드 컴퓨팅에 인식은 당초 목적과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좋지 않다.
그리드 딜리버리(컴퓨팅)의 양면성을 해결할 방법은? 상생을 잊지 말자
살인할 사람은 어떻게든 살인 하기에, 식칼로 살인 사건이 났다고 식칼을 없애자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인 것 처럼, 그리드 컴퓨팅을 사용하는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그리드 컴퓨팅 자체를 없애는 것도 말이 안되고,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GB단위 자료가 우습게 널린 요즘, 업체만의 힘으로 모든 트래픽을 담당하긴 어려울 것이다
최근 기본 10GB는 우습게 넘기는 대용량 게임 다운로드나 Full HD 동영상 스트리밍을 서비스 업체의 서버만을 이용하면 중소규모 업체에서는 특히 부담이 될텐데, 이는 대기업에 속하는 네이버나 다음, 블리자드 등에도 일정 부분 그리드 컴퓨팅을 도입한 것을 보면 부담되는 일일 것이다. (부담되지 않는데도 그리드 컴퓨팅을 쓴다는 것이 들통나면 그 반향은 지금과 비교불가일 것이다.)
기본 데이터량이 커져가는 환경에서 그리드 컴퓨팅은 업체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기술이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알기 어렵게 길고 어려운 전문 용어를 쓴 이용 약관에 짧게 들어가 동작하는지 알기도 어렵고, 정확한 동작 방식이나 사용자가 제어하는 방법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는 그리드 딜리버리(컴퓨팅)는 악성 코드와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인 것은 그리드 컴퓨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블루오션을 찾아 수많은 업체가 난립했던 인터넷 서비스 초기 시대가 지나고, 경쟁력 있는 업체들 위주로 살아남은 안정기도 지난 후, 충분한 노하우와 비법이 알려질 만큼 알려진 현 상황에서의 경쟁은 여전히 살얼음 판을 걷는 살벌한 진검 승부에 비유할 수 있다.
도전하기도 어렵지만 실패하면 그만큼 재기하기도 어려워진 이런 상황에서, 충분히 대체 가능한 서비스까지 있는데 자기돈 내면서 사용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네이버 조차 최근 도입한 스피드뷰라는 이름의 그리드 딜리버리 서비스를 철회한데서 볼 수 있듯, 아직까지 그리드 딜리버리에 대한 국내 사용자들의 인식은 부정적인 편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리드 딜리버리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다면, 사용자에게 알기 쉽게 선택권을 주어 필요할 때 켜고 끌 수 있도록하고, 시스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그리드 딜리버리의 최대 부하량을 사용자가 조정할 수 있도록 하거나, 업체에서 시스템 사양에 따라 자동으로 최대량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애초에 상생을 의해 개발된 그리드 컴퓨팅의 의미를 살려 업체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갑이라는 의식을 버리고 적절한 수준에서 사용자에게 명확한 사용 선택권을 주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