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 논란을 겪던 배트맨 아캄 나이트의 출시를 하루 남겨둔 채 PC 버전 국내 출시가 뜬금없이 3주나 연기되더니, 각종 버그와 성능/ 그래픽 문제로 몸살을 앓다 결국 이틀만에 판매 중지에 들어갔다.
자체적인 품질 기준에 맞춰 수정한 후 다시 출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자신들의 품질 기준에 맞지도 않는 것을 대충 출시했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PC버전은 본가인 락스테디가 아닌 아이언 갤럭시라는 업체에 맡겨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품질 검수를 제대로 안한 락스테디와 유통사 워너브라더스게임도 게이머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이같이 AAA 급으로 분류되며 게이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대작 게임인 배트맨 아캄 나이트의 PC 버전이 이같이 졸작으로 판명되면서, 게임 시장에서 시행 중인 예약구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천문학적 개발비, 은글 슬쩍 사라진 데모 시스템
잠시 시간을 돌려 기자의 기억으로는 2000년대 초만 해도 개발사들은 출시를 앞둔 게임에 대한 트레일러는 물론 실제로 게이머가 체험해볼 수 있는 '데모'를 공개해 게이머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게임인지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게임의 예약 판매도 이번 배트맨 아캄 나이트 한정판 같이 추가 물품 생산이 필요한 말 그대로의 '한정판'을 위주로 이뤄졌지, 일반판의 예약 판매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AAA 급 타이틀의 개발비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최근에 와서는 게이머가 직접 어떤 게임인지 체험해 볼 수 있는 데모 시스템은 거의 사라지고, '데모'로 직접 판단할 경우 떨어져나갈 게이머를 잡아두기 위해 그럴듯한 트레일러로 '낚는' 전략이 도입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결국 다운로드(DL) 판매가 일반화되어 수요 예측 필요성이 거의 사라졌음에도 '일반판'의 예약 판매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트레일러에 낚인 게이머들의 예약판매 금액으로 매출이 확보되니 개발사나 유통사 측에서는 예전처럼 게임성과 품질 향상에 필사적으로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결국, 이번 배트맨 아캄 나이트 PC 버전 사건이 온전히 현재의 트레일러 기반 예약 구매 시스템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게임 품질 보증 못하는 트레일러 기반 예약판매 시스템
현재 게임 시장을 보면, 트레일러 불리는 홍보용 동영상과 게임쇼등에서 화려하게 게이머들의 기대치를 올려놓고 예약 판매를 시작하는데, 문제는 이러한 예약 판매가 너무 일찍 시작한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의 예를 들어보면 미러스 엣지 카탈리스트는 예정 출시일보다 8개월 먼저 예약 판매가 시작되었고, 리부트된 히트맨은 출시를 6개월 앞두고 발표와 동시에 예약 판매를 시작하고 있다. 그나마 폴아웃 4나 레인보우 식스 시즈는 이들보다 짧은 4개월 앞선 예약 판매를 시작하고 있지만, 어쌔신 크리드 신디게이트는 출시일도 불명확한 '2015년 가을'을 내걸고 예약판매가 진행되고 있어 실제 언제 출시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렇게 출시일이 한참 남은 게임의 예약 판매 참여 여부는 결국 트레일러를 통해 공개된 정보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데, 완성을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투자'하는 개념의 '크라우드 펀딩'이나 '얼리 엑세스'와 달리, 대기업의 트레일러는 게이머들에게 '이정도 품질을 보증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트레일러 기반 예약 판매를 진행하는 게임은 대부분 업계 탑을 노리는 대형 개발/ 퍼빌리셔들의 작품으로, 이들은 이렇게 예약 판매를 빙자한 크라우드 펀딩 없이도 대작 게임을 개발할 여력히 충분다고 여겨지는 곳들로, 이렇게 달랑 트레일러만 던져놓고 진행하는 예약 판매가 중소업체의 '크라우드 펀딩'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이번 배트맨 아캄 나이트나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 대기업일지라도 트레일러의 품질이 게임의 품질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이 명확하므로, 명확한 '투자' 개념의 '크라우드 펀딩'이나 '얼리 엑세스'와 달리, 트레일러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대기업 게임의 예약 판매에 대해 게이머들은 '배신감'을 넘어 '사기 당했다'고 느낀다.
디지털 다운로드 시대, 예약 구매를 그만둘 때
앞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게임이 패키지로 유통되던 시대에는 판매망 확충도 어렵고, 판매되지 못한 제고는 그대로 손실로 이어지며, 잘못하면 회사 도산 위기까지 불러왔기에 게임 개발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 상황은 바뀌었어도 게임의 실패가 기업의 존망을 위협하는 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여서, 개발비가 수백만 달러까지 치솟은 요즘의 트레일러 기반 예약 판매 시스템은 개발사와 유통사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지만, 결국 그 피해는 게이머들이 입게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될까?
답은 간단하다. 예약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냉정히 따져보면, 다운로드 게임을 예약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게임이 패키지로 유통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디지털 다운로드 방식이 일반화 되었기에 실물로 판매되는 한정판이 아니면 출시된 게임을 남들보다 늦게 플레이하거나, 패키지 물량이 다 소진되어 구매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배트맨 아캄 나이트 PC 버전 같이 정신나간 경우는 제외하자)
물론, 일부에서는 게임 엔딩을 DLC로 팔아먹는 정신 나간 짓을 하기도 하지만, 예약 판매 특전으로 제공되는 컨텐츠는 어차피 차후 대부분 시즌 패스등의 DLC로 제공되며, 없어도 게임 본편의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이다.
결국, 트레일러로 게이머들을 낚으며 품질 보증도 불가능한 현재의 예약 구매를 할 이유가 전혀없다. 물론 예약 할인이 좀 아쉽겠지만, 예약 구매했다 배트맨 아캄 나이트 같은 지뢰를 밟느니 웹진의 평가나 다른 게이머들의 평가를 듣고 사도 늦지 않다.
또한, 이렇게 완성품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 후 구매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면 지금과 같이 트레일러로 낚는 현재 개발사들의 행태도 조금은 개선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