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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시작해
용산IT유통업계의 한획을 긋고 98년 IMF여파와 함께 휘청하다 2000년 7월 파산선고를 받아 사라져버린 전국단위의 컴퓨터 전문
유통회사 세진컴퓨터랜드를 아신다면, 당신은 필자가 '상도3부.
간지나는 Diamond 그래픽카드가 그립다' 에서 느낀 그때 그 시절의 '로망'을 추억 속에 그리는 '고수'일 것이다.
세진컴퓨터랜드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하자면, 92년, 부산의 대우통신의 완제품컴퓨터 판매대리점이었던 업체로, 부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무차별 광고와
공격적인 매장확장을 통해 우후죽순 확장을 거듭하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국단위의 단일 컴퓨터 판매 대리점을 구축한 유일무이한
업체다.
당시 세진컴퓨터랜드는
전국의 PC열풍을 일으켰으며, 자사의 '세종대왕', '진돗개'컴퓨터는 엄청난 판매고를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당시
완제품컴퓨터를 판매했던 '대우통신'은 모든 판매망을 '세진컴퓨터랜드'에 의지했을 정도였다. 혹자는 세진컴퓨터랜드가 당시 '용산'으로
획일화된 국내 PC유통구조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세진컴퓨터랜드는
무리한 공격확장으로 인해 97년 부도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바로 대우통신에 인수되었으며, 대우통신은 2000년 7월,
세진컴퓨터랜드를 파산 처리했고, 이때의 파산으로 인한 영향은 대우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쳤고 대우그룹 자체가 공중 분해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렇게, '용산 외 유일한 단일유통망' 이던 세진컴퓨터랜드는 2000년 7월 자취를 감추었다.
이때 컴퓨터를 처음
구입한 사람들이나 이 당시에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은 누구나 세진컴퓨터랜드와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95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던 필자는, 당시 즐겨하던 게임들이 'SoundBlaster AWE32'를 지원하는 것을 보고
SoundBlaster Pro 호환모드로 작동시키는 음질에 만족하지 못해 SoundBlaster AWE32를 사고자 별렀던 적이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보던
신문광고에 'SoundBlaster AWE32'를 당시 가격으로 13만9천원에 할인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한 필자는(정가가 아마
18만원선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일 학교를 마치고 서울내의 모든 세진컴퓨터랜드를 뒤진 끝에, 13만9천원에 AWE32를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가 세진컴퓨터랜드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용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쇼핑 편의였다. '용산'은 '용산'까지
나와서 물건을 구입하여야 하지만, 세진컴퓨터랜드는 지금의 '대형할인점' 정도의 거리에 어디에나 있었다. 따라서 쉽게 물건을 살 수
있었다.
세진컴퓨터랜드는 말
그대로 원스톱 쇼핑이었다. 컴퓨터 부품, 완제품 등이 모두 구비되어있어 원하는 제품을 대형할인점 쇼핑하듯 바로 주문하고 결제하고
들고나가면 되는 식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용산은 아직도 상가에 나가야 하고, 물건을 주문하고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봐야
하고, 가격비교사이트를 보고왔냐는 둥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물건을 알바생이 가져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즉,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세진컴퓨터랜드는
지금으로 비교하면 컴퓨터전문 대형할인점과 비슷했다. 가격은 정찰제였고, 그냥 진열되어있는 물건을 들고나가 데스크에서 결제하고 가는
식이다. 전체적으로 용산에 비해 몇천원 ~ 만원 정도 비싼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세일기간일 경우에는 용산보다도 저렴한
제품이 많았다.
셋째로 세진컴퓨터랜드가
그리운 점은 쇼핑다운 쇼핑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름이면 건물전체에 캐리어를 끄는 알바생의 칙칙한 땀내를 맡아야 할 필요도
없다. 여기저기 박스 채로 쌓여있는 물건들 사이를 곡예 하면서 지나갈 필요도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할인점같이 깔끔하게 마련된
쇼핑공간에서, 대형할인점에서 물건을 사듯 편하게 원하는 것을 구입하고 나가면 됐다. 윈도우쇼핑 (아이쇼핑)은 덤이다. 깔끔한
공간에 깔끔하게 전시된 제품은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넷째로 세진컴퓨터랜드는
입점업체가 물건을 판매하는 집단상가형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명 삐끼같은 고객을 유도하는 비상도적 행위가 일체 없다는 점이다.
누구나 들러 부담 없이 제품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구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무료컴퓨터교육 같은 부가서비스 등이
더해져, 컴퓨터문화 양산의 전초기지 역할도 했다.
세진컴퓨터랜드가 부도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용산은 지금도 '쇼핑'과는 거리가 먼, 그냥 문자 그대로 도매상가일 뿐이다.
용산은 '쇼핑'과
거리가 멀다. 용산은 차가 필수지만 역으로 차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다. 용산에서는 왕복 4차선 도로에 2차선까지
침범해 수 톤짜리 트럭을 세우고 물건을 나눈다. 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당연히 피해가야 한다. 교통지옥이다. 주차비는 엄청
비싸고 주차장에 주차하기도 무지 힘들다. 주차장 가는 길은 차가 한번 막히면 30분은 기본으로 정체상황이다.
쇼핑편의는 더욱 찾아볼
수 없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박스, 소비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테리어와 가구배치, 점심시간만 되면 여기저기 널려있는 점심의
흔적들과 음식냄새. 이건 즐거운 쇼핑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필요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용산에 나온 것일 뿐이다. 이는
여성들을 용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반증한다.
10년째
(20년째?혹은 그 이상) 제자리인 용산의 쇼핑편의는 앞으로도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iCoda나
CompuZone같은 용산의 대형쇼핑몰은 최소한 자기 매장이나마 소비자를 배려한 깔끔한 인테리어를 유지하고 있다. 항상
iCoda와 Compuzone의 매장 앞에는 소비자가 북적거린다.
세진컴퓨터랜드는 컴퓨터
유통망의 비주류였다. 용산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유통망이었고, 용산과 차별된 유통망이었으며, 현재의 '하이마트'같은 양판점 모델의
기초를 닦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기존유통망과 차별화된 유통망이었다. 세진컴퓨터랜드가 조금 조심스러운 경영을 했다면, 그리고
컴퓨터가 아닌 가전까지 함께 다루는 유통망이었다면 현재의 '하이마트' 같은 양판점보다 더욱 크고 단단한 소비자 밀접 형
유통망으로서 좋은 모범사례가 되었을 것이다.
그 세진컴퓨터랜드가
1조원이 넘는 매출채권을 남기고 파산이 되었어도 지금도 그리운 이유는, 그런 쇼핑환경을 아직도 어디에서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용산은 여전히 용산이다.
같은 집단 상가인
아키하바라와의 비교는 더더욱 할 수도 없다. 필자는 일본엔 아직 가보지 못해서 뭐라 할 말이 없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맞을 듯
싶다. MBC '무한도전' 은 '아키하바라'엔 가지만 '용산'엔 오지 않는다.
용산은 집단상가체제에
도매상가의 역할을 하면서 많이 병들었다. 세금과 관련된 각종 불법은 기본이고, 이로 인해 비상식적인 판매가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싸면 장땡'으로 굳어져버린, 용산 스스로가 만든 용산트렌드는 이제 20세기의 유물로 전락해버릴 위기에 처했다.
과연 모든 것이 '싸면
장땡'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판매가 1천원 싼 제품보다, 1천원이 비싸더라도 '품위 있게' 쓰길 원한다.
아니라고? 그럼 당신은 계속 당신의 마진에서 1천원 빼서 경쟁사보다 1천원 싸게 팔아라. 먼저 망하는 사람은 당신일 테니.
당시 세진컴퓨터랜드의
브랜드파워는 용산 전체보다 뛰어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