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보드 진출 역시 칩셋 산업 진출과 맥락이 같아

인텔 메인보드 사업의 핵심부서, OPSD
인텔은 70년대부터 이미 OPSD(OEM Products and Services Division)라는 시스템 제조부서를 가지고 있었다. 이 OPSD는, 70~80년대에 PC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설계를 자동화하기 위한 특수 시스템을 제조하는 것이었으며, 이후 OPSD는 인텔 기반의 PC제품을 공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즉, PC 판매사가 PC를 직접 개발하지 않더라도, 인텔에 판매하고 싶은 제품만 의뢰하면 그에 맞게 인텔이 자사의 CPU를 탑재한 PC를 개발하고 제조해 해당 회사의 상표까지 붙여 OEM으로 납품하는 부서였다.
이는 주로 시스템이 새롭게 개편되는 초기 프로세서 탑재 제품이나, 소규모 PC제조사들을 대상으로 주로 진행되었는데, 지금과는 달리 80년대에 PC를 제조한다는 것은 대규모 설비와 엄청난 기술을 요구하였으므로, 소규모 회사에서 직접 PC를 생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 과정을 대신해주는 부서를 가지고 있었고, 90년대까지 이 작업을 진행해 왔었다.
인텔이 메인보드 사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게된 것은 앞서 언급한 인텔 Triton 칩셋을 개발한 펜티엄 프로세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i80486계열의 메인보드는 16비트의 32핀 SDRAM을 사용했고, ISA버스를 사용해 그래픽카드 및 사운드카드 등 확장카드들과 통신하는 구조였으며, 별도의 CPU캐시 (L2캐시) 가 메인보드에 내장된 형태였다. 486시절 이전까지만 해도 현재 통용되는 노스브릿지 - 사우스브릿지의 개념이 없었고, ISA버스 컨트롤과 CPU - CPU-Cache를 연결하는 컨트롤러칩셋만 장착되었고 입출력 칩셋 등이 완벽히 별도로 존재했다.

i80486 메인보드 기판 구조. ISA버스와 32핀의 16Bit DRAM, CPU-Cache가 보이고 그래픽카드 오른쪽으로 메모리컨트롤러와 ISA슬롯 옆으로 ISA컨트롤러가 보인다.
그러나 펜티엄 프로세서 시절부터는 이러한 컨트롤러 칩셋들이 인텔의 Triton 발표와 더불어 노스-사우스 개념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 펜티엄 프로세서는 최초로 L2캐시를 내장한 프로세서가 되어 그전까지 메인보드에 내장되었던 L2캐시가 메인보드에서 사라졌고, 32핀 16비트 메모리가 아닌 72핀 32비트 메모리가 새롭게 채용된다. 또 각각의 컨트롤러 칩셋을 장착하는 것에서 PCI버스 컨트롤러와 메모리 컨트롤러를 통합한 노스브릿지가 등장하고 ISA버스와 입출력 컨트롤러등을 포괄하는 사우스브릿지가 등장한다. 이와함께 80486까지 별도의 쿨링솔루션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펜티엄 프로세서부터는 드디어 방열판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어 반도체칩셋의 열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현재 메인보드의 폼팩터를 만든 펜티엄 메인보드 (Micronics사의 M54Hi) 72핀 메모리 슬롯이 오른쪽에 보이고, 인텔의 430HX 노스브릿지와 사우스브릿지, PCI 버스 와 ISA버스가 보인다.
언듯 칩셋의 갯수가 줄어들면 설계가 더욱 쉽다고 생각되기 마련이지만, 집적화 기술이 떨어지는 당시에는 고집적 칩셋을 다루는 기술 자체가 미국이나 일본에서만 다루는 고품질 기술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었다는 데 동의가 가능하다. 실제로 9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메인보드는 대만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하였으며, 현재는 메인보드 3대 제조사인 ASUS, MSI, GIGABYTE 모두 미국 메인보드 제조사의 OEM공장이었을 뿐이고 자체적인 메인보드 설계기술이 없었다. 당시 가장 대중적으로 판매된 메인보드가 미국 Micronics사의 메인보드였다는 점, 90년대 초 ~ 중반 미국산 메인보드와 대만산 메인보드는 시장에서 대우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펜티엄 프로세서 출시와 더불어 완벽하게 변화하는 PC플랫폼에 써드파티 제조사와 PC완제품 제조사가 완전히 기술을 습득하여 관련된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전까지, 인텔은 OPSD사업부에서 자체적으로 PC를 제조하고 메인보드를 개발/설계/생산해 메인보드 제조사와 PC완제품 제조사에 OEM납품하여 펜티엄 프로세서 적용 PC가 빠르게 판매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인텔 메인보드의 실질적인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텔메인보드 사업의 실질적 기초가 된다.
당시 OPSD사업부를 총괄한 프랭크 길(Frank Gill, 인텔 부사장까지 올라갔다 2000년 ITXC로 회사를 옮겼다)은 "최초의 펜티엄 프로세서 아키텍처는 설계가 아주 힘든 것이었고, 높은 클럭속도와 열관리에 많은 보완을 해야 했으며, 새로운 PCI버스 아키텍처와 입출력시스템 작업을 수반했기에 OPSD부서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줌으로서 PC완제품제조업체들이 빠르게 펜티엄 프로세서 장착 PC를 공급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라고 1999년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인텔이 메인보드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
또한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인텔이 왜 메인보드 사업에 많은 비중을 두었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의 PC제조라면, ASUS나 MSI, GIGABYTE에서 판매하는 메인보드, 그래픽카드등을 구입하다가 조립하고 테스트하여 제품을 제조하는 상황이지만, 당시에는 PC완제품 제조사가 직접 메인보드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것도 병행했다. 실제로 국내의 삼보컴퓨터도 직접 자사의 PC에 장착되는 메인보드는 직접 개발하고 생산해 사용했으며, 한때 국내 메인보드제조사로 유명했던 '석정'메인보드도 그러하고, 삼성전자도 자체적으로 메인보드를 제조했다. 현재 메인보드 유통을 하고 있는 빅빔도 80년대 후반 자체적으로 메인보드를 개발/생산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펜티엄 프로세서 개발 초기 대형 PC제조사는 486플랫폼 개발에 이미 막대한 R&D 자금을 투여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기 보다는 486플랫폼이 더 지속되기를 원했다. 이들은 초기에 아예 펜티엄 프로세서 장착 PC를 제조하지 않고 인텔을 압박했으며, 인텔은 이러한 PC제조사에 역공으로 소규모 PC제조사들에게 펜티엄 프로세서 장착 PC를 판매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규모 PC제조사들이 대형회사들도 꺼리는 펜티엄 프로세서 장착 PC를 직접 생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인텔은 이러한 소규모 회사들이 펜티엄 PC를 판매할 수 있도록 OPSD를 통해 PC를 OEM으로 공급해주었다. 이러한 전략은 성공해 인텔의 예상보다 빠르게 펜티엄 프로세서의 빠른 정착을 도왔던 것이다.
인텔의 이러한 전략은 1994년 기준 펜티엄 프로세서 기반 전체 PC메인보드의 40%를 인텔이 공급하는데까지 이르렀으며, 1995년에는 1000만개의 PC메인보드를 생산해 판매하기에 이른다. 매출은 약 4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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